한국에서 사업개발은 왜 어색한가
사업개발자가 뭘 하는 사람이냐고 물으면, 대부분 비슷한 대답이 돌아옵니다. "영업 비슷한 거 아니야?", "전략기획팀에서 하는 거 아닌가?" 한국에서 사업개발은 아직 독립된 직무로 인식되기보다, 영업이나 제휴, 전략기획의 일부로 묶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지만 Salesforce, AWS, Stripe, HubSpot, Notion 같은 글로벌 기업의 JD를 열어보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이 회사들은 사업개발자를 분명하게 구분된 역할로 정의하고 있고, 그 정의는 회사마다 놀라울 정도로 다릅니다.
같은 "Business Development"라는 타이틀 아래에서, 어떤 회사는 리드를 선별하는 사람을 찾고, 어떤 회사는 생태계를 설계하는 사람을 찾고, 어떤 회사는 커뮤니티를 키우는 사람을 찾습니다.
1. Salesforce
Enterprise SaaS (CRM)
Salesforce의 사업개발자(BDR)가 집중하는 일은 명확합니다.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발굴하고, 잠재 고객의 Pain Point를 파악해서, 세일즈 팀이 시간을 쓸 만한 리드만 걸러내는 것입니다.
이 역할이 왜 필요한지는 영업 현장을 생각하면 바로 와닿습니다. 엔터프라이즈 세일즈에서 모든 리드에 동일한 시간을 쏟는 건 비효율적입니다. 전환 가능성이 10%인 리드와 60%인 리드를 같은 무게로 다루면, 영업 조직 전체의 속도가 느려집니다.
Salesforce의 BDR은 바로 이 병목을 해소합니다. CRM 데이터와 리포트를 활용해 잠재 고객에 우선순위를 매기고, 대형 고객과는 사업 초기 단계부터 관계를 만들어갑니다. 영업팀이 "더 가치 있는 기회"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앞단의 구조를 설계하는 것이 이 역할의 본질입니다. (참고: Salesforce BDR JD)
2. HubSpot
Marketing & Sales SaaS
HubSpot은 인바운드 마케팅을 사업 모델의 중심에 놓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곳의 사업개발자가 마주하는 문제도 다릅니다. Salesforce처럼 리드를 직접 발굴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정보를 찾아 들어온 잠재 고객을 양질의 비즈니스 기회로 성장시키는 일에 집중합니다.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 걸까요? 콘텐츠를 통해 유입된 방문자가 블로그를 읽고, 가이드를 다운받고, 웨비나에 등록하는 과정을 거칩니다. HubSpot의 BD는 이 여정 데이터를 CRM과 연결해서, 고객이 "정보를 얻는 단계"에서 "구매를 고민하는 단계"로 자연스럽게 넘어가도록 흐름을 설계합니다.
영업팀과 마케팅팀 사이에서 고객 경험을 최적화하는 협업 구조를 만드는 것도 이 역할의 핵심입니다. (참고: HubSpot이 사업개발을 중시하는 이유)
3. Stripe
Fintech Infrastructure
Stripe의 사업개발은 결제 기술을 판매하는 것이 아닙니다. 결제가 매끄럽게 작동하는 인프라를 구축하는 것에 가깝습니다.
왜 이런 구분이 중요할까요? 신흥 시장에는 각기 다른 결제 방식, 규제, 사용자 행태가 존재합니다. 동남아에서 통하는 결제 흐름이 라틴아메리카에서는 전혀 다를 수 있습니다. Stripe의 BD는 이런 차이를 찾아내고, 각 시장에 맞는 API 현지화와 통합 프로세스를 설계합니다.
현지 파트너와 개발자 커뮤니티와 협력해 인프라 생태계를 강화하고, 제품-시장 적합성(Product-Market Fit)을 검증하기 위한 파일럿 프로그램을 직접 주도하기도 합니다. (참고: Stripe BD JD)
4. AWS
Cloud Infrastructure
AWS의 사업개발 조직은 앞서 본 세 회사와 결이 다릅니다. 리드를 선별하거나 인바운드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파트너십과 에코시스템 설계에 특화되어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할까요? AWS의 BD는 각 산업의 핵심 기술 플레이어들을 연결합니다. 헬스케어에는 의료 특화 파트너를, 금융에는 금융 전문가를, 리테일에는 유통 기업을 연결해서, 도메인별 맞춤형 시장 진입 전략(GTM)을 설계합니다. 이 파트너들과 긴밀하게 협력해 AWS 기반 솔루션을 공동 기획하거나, 산업별로 새로운 클라우드 서비스를 빠르게 확산시키는 것까지가 BD의 범위입니다. (참고: AWS BD JD)
단순히 솔루션을 판매하는 것과, 파트너들이 AWS 위에서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는 생태계를 짓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일입니다.
5. Notion
Productivity SaaS
Notion의 사업개발은 가장 독특합니다. 광고나 영업 주도 방식이 아니라, 커뮤니티 중심 성장이라는 전혀 다른 경로를 택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작동하는 구조일까요? Notion은 실제 사용자들이 앰배서더로 활동하며 템플릿, 노트, 사용 사례를 자발적으로 공유하게 만들었습니다. 학생·에듀케이터 커뮤니티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사용자가 만든 콘텐츠가 온라인에서 자연스럽게 바이럴되는 성장 루프를 설계했습니다.
"사용자가 사용자를 데려오는 구조" 덕분에, 대규모 유료 광고 없이도 글로벌 3,000만 명의 사용자를 확보했고, 점차 엔터프라이즈 고객까지 확장하고 있습니다. (참고: Notion의 성장 방식)
여기서 BD의 역할은 커뮤니티 프로그램을 설계·운영하고, 유저 생성 콘텐츠가 확산되는 루프를 구축하며, Bottom-up 채택에서 Enterprise 전환으로 이어지는 모델을 설계하는 것입니다.
다섯 기업이 공통으로 말하는 한 가지
다섯 회사의 BD는 모두 다른 일을 합니다. 리드를 선별하고, 인바운드를 키우고, 인프라를 깔고, 생태계를 짓고, 커뮤니티를 설계합니다. 하지만 이 다섯 역할을 관통하는 공통점은 분명합니다.
이 기업들은 사업개발자를 '기술자'나 '영업가'가 아니라, '구조를 짓는 사람'으로 정의한다는 점입니다.
직접적인 매출 창출을 담당하지 않으면서도, 새로운 사업 기회를 설계하고, 파트너십을 연결하며, 조직의 성장 동력을 만들어내는 역할. 무언가를 팔기보다, "어떻게 팔릴 구조를 만들 것인가"를 고민하는 역할. 그래서 많은 조직에서 이 포지션은 '경계선 위의 직무'로 오해받곤 합니다. 무엇을 정확히 해야 하는지 명시하기 어렵고, 단기적인 KPI로는 성과를 측정하기도 어렵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글로벌 선도 기업들이 이 역할을 찾는 이유는 결국 하나입니다. 기존 프레임을 벗어나 새로운 생태계를 만들고, 산업의 룰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